테니스 여제 마리아 샤라포바의 탄생
프로 테니스 세계에서 마리아 샤라포바(Maria Sharapova)는 팬과 열성팬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며, 테니스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알려진 테니스 스타입니다. 마리아 샤라포바(Maria Sharapova)는 1987년 4월 19일 러시아 냐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테니스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샤라포바가 2살이었던 1989년, 가족 모두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피해 소치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부모님이 전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했던 예브게니 카펠니코프의 부모님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샤라포바는 4살 때 카펠니코프가 라켓을 선물해 준 것을 계기로 테니스를 시작합니다. 이후 '철의 여왕'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샤라포바의 재능을 발견한 뒤 그녀의 아버지에게 미국행을 권유했습니다. 고민하던 아버지는 샤라포바가 7살이 되던 해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가 정식으로 테니스 수업을 받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후 샤라포바의 아버지 유리 샤라포프는 아버지이자 코치, 매니저, 그리고 운전기사 등의 역할을 모두 하며 샤라포바의 테니스 인생에 함께 하였습니다. 플로리다에 도착한 샤라포바는 안드레 아가시, 모니카 셀레스 등이 거쳐간 세계적인 명문 테니스 교육 기관인 닉 볼레티어리 아카데미로 가서 전문적인 테니스 교육을 받았습니다. 큰 키에서 나오는 강력한 서브, 본인의 열정과 아버지의 헌신이 더해져 샤라포바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2004년, 17살의 나이에 윔블던에 출전하여, 전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세레나 윌리엄스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어린 나이,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가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그야말로 전 세계가 깜짝 놀랐고, 열광했습니다. 그해 9월에 WTA 투어 코리아오픈 초대 챔피언이 되었으며 이후 수많은 광고와 TV쇼 출연으로 막대한 부를 손에 넣었다. 이후 2006년 US오픈, 2008년 호주 오픈과 2012년, 2014년 프랑스 오픈을 제패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지난 2000년 32살의 나이로 은퇴했습니다.
플레이스타일
샤라포바는 공식 신장 188cm로 여자 선수로는 큰 키에 속합니다. 큰 키에도 상당히 빠른 움직임을 가진 선수입니다. 큰 체격에서 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를 하는데 베이스라인에서 강력한 포핸드와 백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하는 스타일입니다. 네트 플레이시 그녀의 강력한 파워와 빠른 발놀림을 살려 일반적인 발리샷이나 스매시보다 스윙 발리를 구사합니다.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단순한 플레이에서 경험이 쌓이면서 드롭샷이나 슬라이스 등을 사용하며 경기 운영 능력을 향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샤라포바는 최고 시속 190km에 육박하는 강력한 첫 번째 서브를 구사하는데 평균적으로 시속 170km 후반대의 스피드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어깨 부상이 생긴 후 서브의 스피드 및 정확도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녀의 주 무기 중의 하나였던 버스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고전하였습니다. 부상으로 서브 동작이 간결해지면서 고전하였으나 부상을 회복한 이후에는 다시 전성기와 비슷한 폼으로 돌아와 2010년 버밍엄 대회에서 자신의 최고 속도인 시속 194km를 기록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샤라포바의 상징은 '함성'입니다. 2005년 윔블던에서 101 데시벨까지 기록했던 그녀의 함성은 경기 중에 다른 선수가 경기에 방해가 된다며 소리를 낮춰 달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샤라포바의 선한 영향력
마리아 샤라포바는 지난 2005년부터 11년 연속 포브스가 선정한 여자 스포츠선수 수입 순위에서 1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늘씬한 몸매 덕분에 모델로도 활동하였고, 코트 위에서 보여주는 남다른 패션감각 역시 그녀의 상품성을 더했습니다. 우아하고 섹시한 스포츠 테니스와 샤라포바의 이미지는 여러모로 잘 매칭되어 수많은 기업의 스폰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나이키, 태그호이어, 에이본, 에비앙, 캐논, 모토로라 등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이 중 나이키와는 2010년에 로열티와 보너스를 포함하여 8년간 총 7000만 달러(약 851억원)를 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그녀는 휴식기간을 활용해 자신의 이름을 딴 사탕 브랜드 '슈가포바'를 창업하였습니다. 슈가(Sugar)에 자신의 이름 뒷글자 포바(pova)를 더해 슈가포바라고 지은 것입니다. 한 봉에 6~7달러로 일반 사탕보다 5~6배 정도 비싸지만 명품 사탕으로 포지셔닝하였고, 샤라포바는 사탕 한 봉지 당 1.10달러를 수입으로 가져갔습니다. 2013년 8월경에 샤라포바가 자신의 이름을 슈가포바(Sugarpova)로 개명한다고 해서 화제를 낳았는데 실제 바꾸지는 않았으며, 이는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US OPEN 주간에 화제성을 노린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에어 조던(AIR JORDAN) 시리즈를 히트시킨 것과 같이 샤라포바 자신의 브랜딩을 성공적으로 론칭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경로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을 다양한 자선 활동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2012년, 전 세계 어린이들이 양질의 교육과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데 초점을 맞춘 마리아 샤라포바 재단을 설립하였고, 체르노빌 원전 피해자들을 꾸준히 돕고 있습니다.